AI 네이티브 기업으로의 전환을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되는 개념이 **데이터 메시(Data Mesh)**다. 각 부서가 자기 데이터를 단순히 저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품질의 ‘데이터 상품’으로 만들어 공유하는 구조는 AI 활용도를 크게 끌어올린다. 데이터 사일로를 해소하고, 조직 전체가 데이터 기반으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아무리 잘 정제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급받더라도, 그것만으로는 AI가 고객의 맥락을 이해하거나, 개인별로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하기 어렵다. 단순 반복 답변을 내놓는 챗봇에 쉽게 질리는 것처럼, 고객은 이제 ‘데이터에 접근하는 AI’가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내는 AI’를 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지속적 컨텍스트 계층(CPL, Contextual Persistency Layer)’이다.
CPL은 단순한 데이터 기록 장치가 아니다. 고객과의 대화를 저장하는 수준을 넘어, 고객이 설정한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발생하는 모든 상호작용과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결한다. ERP의 재고 데이터, SCM의 공급망 일정, MES의 생산 라인 정보, 그리고 고객의 의도까지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내는 ‘실시간 의미 기반 조율 계층’인 셈이다.
쉽게 말해 CPL은 기업의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지는 각각의 데이터가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살아있는 디지털 스토리’로 이어지도록 하는 두뇌 같은 역할을 한다. 과거의 트랜잭션 기록이 단순한 이력이라면, CPL은 미래 행동을 이끌어내는 실시간 지능이다.
이를 실제 제조업 사례로 살펴보자. 한 에너지 기업이 정찰용 드론 100대를 긴급 주문했다고 하자.
전통적인 방식에서는 영업팀이 고객 요구사항을 받아 설계팀·구매팀·생산팀 등에 순차적으로 메일을 보내고, 각 부서가 ERP·SCM·MES 등 자기 시스템만 참고하며 답을 모은다. 이 과정만 해도 일주일 이상 소요되고, 고객이 답변을 받았을 때는 이미 경쟁업체로 발길을 돌렸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CPL을 갖춘 AI 네이티브 기업은 접근 방식이 다르다. 고객이 웹사이트에서 요구사항을 입력하는 순간, ‘고객 목표 컨텍스트’라는 디지털 객체가 생성된다. 이 객체는 AI 오케스트레이터의 관리 아래 ERP에서 재고를, SCM에서 부품 조달 일정을, MES에서 생산 가능성을 동시에 조회한다. 결과는 불과 수 초 안에 도출된다.
AI는 고객에게 즉각적으로 최적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요청 사양대로는 부품 수급 문제로 6주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능이 약간 더 좋은 대체 카메라를 선택하면 3주 만에 납품 가능하며, 가격은 동일합니다. 두 가지 견적을 지금 발송해드릴까요?”
고객이 대안을 수락하는 순간, CPL은 곧바로 ERP에 자재를 할당하고, MES에 생산 일정을 확정하며, SCM에 공급망 업데이트를 진행한다. 사람이 직접 부서를 오가며 확인하던 절차가 자동화되면서, 실행 속도와 정확성 모두에서 큰 도약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CPL은 기업을 단순히 ‘고객 요청에 대응하는 조직’에서 ‘고객 목표 달성을 주도적으로 오케스트레이션하는 조직’으로 변화시킨다. 레거시 시스템에 저장된 데이터는 더 이상 과거의 기록물이 아니라, 고객 개개인에게 맞춘 가치사슬(Value Chain)을 실시간으로 재편성하기 위한 원재료가 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전환은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와 프로세스를 단순 관리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실행력을 갖춘 아키텍처(System of Action)로 진화하게 만든다. AI가 데이터를 소비하는 수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해 기업 전체를 실시간으로 조율하는 지능으로 발전하는 것이다.